
아침마다 프렌치불독 ‘모카’와 동네를 도는 산책은, 처음엔 단순한 의무였다. 출근 전 에너지를 빼줘야 사고를 안 친다는 말에 시작했지만, 어느새 하루의 흐름을 다시 짜는 중심이 됐다. 모카는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흙냄새, 낯선 발자국, 바람의 방향까지 모든 것에 반응한다. 그 호기심 어린 눈빛을 따라 걷다 보면, 내가 미처 못 본 계절의 변화가 발끝에 스며든다.
예전엔 늘 바쁘게 걷기만 했다. 목적지가 없으면 움직일 이유도 없던 사람이었는데, 모카와 걷는 산책길은 목적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가르쳐준다. 오늘은 몇 걸음마다 앉아 풀잎을 핥고, 내일은 한참을 뛰다가 갑자기 주저앉는다.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는 이 작은 존재 덕분에, 나는 비로소 ‘지금’에 머무는 연습을 배우는 중이다.
산책을 통해 깨달은 건, 반려견에게 필요한 건 단순한 운동량이 아니라 안정감이라는 사실이다. 모카가 안정감을 느끼기 시작하자 문제행동이 줄었고, 낯선 사람에게 짖던 습관도 서서히 사라졌다. 훈련 매뉴얼에는 없는 변화였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걷는 그 일관성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반려견의 심리는 생각보다 섬세하고, 하루의 작은 패턴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
요즘은 산책 코스를 일부러 다양하게 바꾸기도 한다. 같은 길만 걷다 보면 새로운 자극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모카가 새로운 길목을 지나며 귀를 쫑긋 세우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짧은 거리라도 새로운 경험을 주는 게 중요하다는 걸, 이 아이는 몸으로 보여준다.
사실 훈련사로 일하면서 수많은 반려견을 만났지만, 정작 내 반려견과의 관계는 늘 미뤄두고 있었다. 일처럼 다루다 보면 감정이 희미해질까 봐서였다. 그런데 모카는 그런 걱정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감정 없이 훈련만으로는 만들 수 없는 신뢰가, 함께 걷는 이 단순한 시간 속에 있었다.
이제는 산책이 하루의 시작이자 마무리가 됐다. 이 작은 습관이 모카의 마음을 바꾸고, 내 삶의 속도를 바꾸었다. 앞으로도 그 변화의 과정을 차근차근 지켜보고 싶다. 느리게 걷더라도, 함께라면 충분히 빠른 걸음을 걷고 있다는 걸 매일 실감하고 있으니까.
– 임세현 트레이너
